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바토리 에르제베트 (문단 편집) === 재판 === 에르제베트의 손에 붙잡힌 희생자들 중 한 명이 극적으로 탈출하여 외부에 신고하여 그 마각이 드러났다. 그 뒤 군대가 투입되어 전원이 검거되었다. 에르제베트의 성을 수색하던 귀족 지휘관인 죄르지 투로즈와 군인들은 그 참혹한 행각에 모두 경악했다고 한다. 한편으로는 마을의 여자들이 에르제베트의 성에 가기만 하면 사라진다는 신고를 받고 조사관인 죄르지 투르조가 에르제베트의 성에 가서 연쇄 살인의 단서를 잡았다는 이야기도 있다. 결국 연쇄살인범으로 기소되어 1611년 재판을 받았지만 본인은 귀족이라 출석하지 않았다고 한다. 범행에 적극 가담한 에르제베트의 집사 및 하녀들은 전원 사형에 처해진 반면,[* 다만 범행의 주동자는 아니라는 이유로 일반적인 사형을 받았다고 한다. 물론 그 일반적인 사형이란 게 참수형 아니면 교수형 후에 이뤄지는 화형이기는 하지만.] 그 시대 법률로는 [[귀족]]을 사형에 처할 수 없었기 때문에[* 사실 당시 법률로도 에르제베트를 처형하는게 충분히 가능했다. 하지만 처형하면서 그녀의 재산을 몰수하려고 하였기에 에르제베트의 가족들과 헝가리 귀족들이 같은 사례를 남기지 않으려고 강력히 반대하였기에 사형을 면한것이다.] 대신 일종의 무기 [[금고(형벌)|금고]]형에 처해졌는데, 능히 사형의 대안이 될 만큼 가혹한 것이었다. 식사를 넣어 주는 구멍 외에는 모든 것이 밀폐되고 빛조차 들어오지 않는 어두운 탑 꼭대기의 독방에 갇혀 서서히, 그리고 비참하게 죽어가는 형벌이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